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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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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역사에 대해서.

아프리카(Africa, 음역: 아불리가(阿弗利加))는 아시아 다음으로 면적이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이다. 면적은 주변 섬을 합하여 32십만km²으로, 지표 표면의 6%이며, 육지 면적의 20.4%를 차지한다.61개 영토에 10억 명(2009년 기준)이 살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14.8%에 해당한다.

아프리카 대륙 주변으로 북쪽에는 지중해, 북동쪽에는 수에즈 운하와 홍해, 남동쪽에는 인도양, 서쪽에는 대서양이 있다. 이 대륙에는 분쟁 지역인 서사하라를 빼고 마다가스카르와 여러 도서 지역을 포함하여 총 54개국이 있다.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미국등 선진국에서 음식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배급량이 얼마 안 되어서 굶는 사람이 더 많다.

아프리카 중 특히 동아프리카는 학계에서 현생 인류와 사람과 계열의 발상지로 여겨지는데, 초기 인류와 그 조상의 발견되었으며, 200,000여 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초기 호모 사피엔스와 더불어 7백만여 년 전에 발견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르가스테르 등의 많은 유인원들도 발견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으로 적도가 지나가며, 온갖 기후대가 나타난다. 또 북부 온대에서 남부 온대가 걸쳐있는 유일한 대륙이기도 하다.

중생대 초 아프리카는 판게아의 일부로 지구의 다른 대륙과 붙어 있었다. 아프리카는 트라이아스기에 가까워질 때까지 초대륙 전체를 통틀어 수각룡, 고용각룡, 원시 조반목이 지배적인 균일한 동물군을 이루었다.

후기 트라이아스기 화석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발견되며, 북부보다는 남부에 더 많이 나온다.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의 아프리카 지층에 대해 철저히 연구되지는 않았으나, 두 시대는 전지구적인 영향으로 발생한 멸종 사건으로 경계를 이룬다.


전기 쥐라기 지층은 후기 트라이아스기의 층과 비슷한 모양으로, 남쪽에는 노두(outcrop)가 더 흔하고 화석층은 적은데, 북쪽으로 갈수록 화석층이 많아진다. 쥐라기가 지나면서 아프리카에는 용각류조각류와 같은 더욱 거대해진 공룡 무리가 늘어났다.


중기 쥐라기 지층은 아프리카에서 잘 보이지 않고 연구도 잘 되지 않은 실정이다. 후기 쥐라기 지층도 탄자니아텡데구루(Tendeguru) 동물군을 빼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후기 쥐라기 텡데구루는 북아메리카 서부 모리슨 지층에서 발견된 화석과 비슷하다.


중생대 중반, 15천만~16천만여 년 전에 마다가스카르 섬이 아프리카에서 떨어져나왔는데, 이 섬은 인도와 여타 곤드와나 땅덩어리에 붙어있었다. 마다가스카르의 화석 가운데는 아벨리사우루스티타노사우루스가 있다.


마다가스카르와 달리 아프리카 본토는 중생대에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상태였다. 그러나 판게아의 나머지 땅덩어리가 계속 갈라지면서, 다른 대륙과 관련하여 큰 변화가 있었다.[15] 후기 백악기 초에 남아메리카는 아프리카에서 떨어져 나가 남대서양을 이루게 되었다.[15] 그리하여 해류 변화로 전지구의 기후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백악기에 아프리카에는 거대한 육식 공룡 등 알로사우루스류나 스피노사우루스류가 살았다.[15] 티타노사우루스는 이 지역의 고대 생태계에서 중요한 초식 동물이었다.[15] 백악기의 유해는 쥐라기 유해보다 많으나, 동위원소 연대 측정이 안되서 정확한 시기를 알기 힘든 경우가 많다.



선사 시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루시, 1974 11 24에티오피아에서 발견.

고인류학자 대부분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류가 발생하였으며, 지구상에서 인간이 최초로 거주한 땅이라고 보고 있다. 20세기 중반 인류학자들은 아마 7백만여 년 전에 인간이 살았던 여러 증거와 화석을 발견하였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동위원소 연대측정에 따라 기원전 39십만~3백만 년경),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대략 기원전 23십만~14십만 년경)), 호모 에르가스터(기원전 19십만~6십만 년경) 등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보이는 초기 유인원 여러 종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선사 시대에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과 마찬가지로) 나라가 없었으며, 코이족산족처럼 사냥과 채집으로 먹고 사는 무리들이 살았다.


빙하
시대
가 끝나자(기원전 10,500년 경 추정) 사하라 사막은 비옥한 녹지 계곡으로 바뀌었으며, 아프리카 사람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해안 고지나 내륙에서 나와 이 곳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기후가 따뜻하고 건조해지자 기원전 5000년경 사하라 지역은 점차 건조하여 살기 힘든 곳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하라를 떠나 제2폭포 밑의 나일강 계곡으로 가서, 영구적인 혹은 영구적인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큰 기후 정체가 일어나자 중앙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에 계속 많이 내리던 비가 줄었다. 이 시기부터 동아프리카는 건조한 날씨가 우세하게 되었으며, 이후 200여 년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이어졌다.


아프리카에서 농경이 발생하기 전에 소가 가축화되었는데, 아마 사냥ㆍ채집도 병행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6000년경 북아프리카에서 소는 이미 길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사하라-나일강 지역에 사람들은 알제리에서 누비아 사이 지역에 흔하던 나귀나 염소 등의 여러 동물을 길들였다.

기원전 4000년에 사하라의 기후는 급속하게 건조해졌다. 이 기후 변화로 호수와 강은 크게 말라버리고, 사막화가 심해졌다. 그리하여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줄어들고, 농경 집단이 서아프리카의 열대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일조하였다.


기원전 1000년경, 북아프리카에 철기가 도입되어, 사하라를 지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북부 지역에도 급속히 확산되었다. 기원전 500년경 금속 가공은 서아프리카에서 보편화되었다.

기원전 500년경에 동서 아프리카 지역에 철기 이용이 완전히 확립되었는데, 다른 지역은 기원후 몇백 년이 돼서야 철기를 가공하게 되었다. 이집트, 북아프리카, 누비아, 에티오피아에서 기원전 500년경에 만들어진 구리 유물이 서아프리카에서 발굴되기도 하였는데, 이 시기에 사하라 사막 사이로 무역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 문명

이집트 아부 심벨람세스 2의 거석. 기원전 1400년경.

기원전 3300년경 북아프리카에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문자가 생기면서 역사 기록이 등장한다. 세계적으로 오래된 문명인 이집트는 다른 지역에 영향을 주면서 기원전 343년까지 존속하였다. 이집트의 영향력은 오늘날 리비아크레타 북부, 가나안, 남쪽으로는 악숨 왕국, 누비아까지 이르렀다. 북서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와 무역을 하면서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었다.


아프리카에 온 첫 유럽인은 고대 그리스인로마인이었다.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 사람에게 해방자로 환영받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집트에 알렉산드리아를 세웠으며, 그가 죽은 뒤 이 도시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로 번영하였다.

 이후 로마 제국이 북아프리카 해안 지역을 정복하여, 이 지역은 경제와 문화 면에서 로마 세계에 편입되었다. 로마인의 거주지는오늘날 튀니지나 여타 해안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팔레스티나에서 이집트를 따라 이곳까지 전파되었으며, 남쪽으로 로마 제국의 경계를 넘어 누비아까지 퍼졌으며, 최소 6세기에는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렀다.


7
세기 초에 새로이 발흥한 아랍의 이슬람 제국이 이집트를 지나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하였다. 이 지역의 베르베르족 상류층은 급속히 무슬림 아랍 부족에 통합되었다.8세기에 우마위야 왕조의 수도 다마스쿠스가 함락되자, 지중해 세계에서 이슬람의 중심지는 시리아에서 북아프리카의 카이라완으로 옮아갔다. 무슬림 북아프리카는 다양하게 발전하여, 신비주의자, 학자, 법학자, 철학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슬람은 주로 무역로와 이주를 통해 사하라 이남에도 퍼졌다.



9
세기 ~ 18세기

식민 지배 이전의 아프리카에는 10,000개 이상의 국가와 집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제각각의 정치 조직과 지배 체제를 이루었다. 이 가운데는 아프리카 남부의 산족처럼 사냥과 채집 생활을 하는 작은 가족 집단도 있고, 아프리카 남부와 중부의 반투어권 씨족 집단처럼 좀 더 크고 조직을 갖춘 집단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프리카의 의 씨족 집단, 사헬 지역의 왕국들, 서아프리카의 요루바이그보(Igbo) 혹은

동아프리카
스와힐리 해안의 무역 도시와 같은 자치 도시국가나 왕국처럼 더욱 체계를 갖춘 나라도 있었다.

기원후 9세기경 초기 하우사 등 일련의 왕조 국가들이 사하라 이남 사바나에서 서부 지역부터 중부 수단을 지배하였다. 이 가운데 가장 강력한 나라는 가나, 가오, 카넴 보르누 제국이었다. 가나는 11세기에 쇠퇴하였으나, 말리 제국이 뒤를 이어 13세기에 서부 수단 대부분을 통합하였다. 카넴은 11세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서아프리카 해안의 삼림 지역에는 북쪽 무슬림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립 왕국들이 성장하였다. 이그보의 은리 왕국(Nri) 9세기에 세워진 초기 왕국이었다. 또 오늘날 나이지리아 땅에서 매우 오래된 왕국으로, 에제 은리(Eze Nri)가 다스렸다. 은리 왕국은 이그보 우크부(Igbo Ukwu)에서 발견된 정교한 청동 유물으로 유명하다. 이 청동 유물은 9세기경으로 보인다.


요루바
의 도시국가와 왕국 가운데 역사상 최초의 나라 이페(Ife)이페의 우니(Ooni)라는 성직자 오바(oba, 요루바어 "" 혹은 "지배자"를 뜻한다)가 다스렸다. 이페는 아프리카에서 종교와 문화면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청동 조각의 독특한 자연주의 전통으로 유명하였다. 이페의 정부 형태는 오요 제국(Oyo)에서 수용하여, 이곳의 오바(임금)오요의 알라핀(alaafin)이라고 하였으며, 한때 수많은 다른 요루바 혹은 요루바 도시국가와 왕국을 다스렸다. 다호메이 왕국(Fon)오요의 지배를 받는 요루바 나라 중 한 곳이었다.


알무라비툰
사하라 사막베르베르 왕조로, 11세기에 광활한 북서 아프리카 지역과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하였다. 바누 힐랄과 바누 마킬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온 아랍 베두인 부족의 연합체로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이집트를 거쳐 서쪽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이 이주하면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이 융합하여, 지역 주민이 아랍화되고, 아랍 문화는 이슬람을 기초로 지역 문화의 여러 요소를 흡수하였다.


말리 제국이 붕괴하자 손니 알리(Sonni Ali, 1464~1492)라는 지역 지배자가 니제르 중부와 수단 서부에 송가이 제국을 세우고 사하라 사막간 교역을 장악하였다. 손니 알리는 1468팀북투, 1473년에는 제네(Djenne)를 함락하여 교역 수입과 무슬림 상인의 지원을 받아 자신의 정권을 세웠다. 그의 후계자 아스키아 모함마드 1(Askia Mohammad I, 1493?1528)는 이슬람을 국교로 삼아 모스크를 짓고, 수단의 아프리카 무슬림 학문 전통을 세운 알 마길리(al-Maghili)와 같은 학자들을 가오에 보냈다. 11세기경 카노(Kano), 지가와(jigawa), 카치나(Katsina), 고비르(Gobir) 등 일부 하우사 나라은 성벽 도시로 발전하여, 무역에 종사하고 대상(
隊商)을 맞아들이며 재화를 생산하였다. 15세기까지 이들 소국들은 당대 수단 제국의 변경에 있었으며, 서쪽의 송가이와 동족의 카넴 보르누에 공물을 바쳤다.



노예 무역의 정점

유사 이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서도 노예제가 있었다. 7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아랍의 노예 무역은 사하라 사막과 인도양 교역로를 통하여 18백만의 아프리카 노예를 데려갔다. 1482 포르투갈인들은 엘미나에 자리를 잡고 기네아 해안에 수많은 무역 항구를 설립하였다. 주요 상품은 노예, 황금, 상아후추였다. 유럽인들이 1492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자, 이전에는 육상 무역이며 여러 대륙에 걸쳐 분화되었던 노예 무역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를 주축으로 급속하게 발달하게 되었다.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대서양간 노예 무역으로 7백만~12백만의 노예가 신세계로 보내졌다.


서아프리카
에서는 1820년대에 대서양간 노예 무역이 쇠퇴하면서 이곳 나라들은 갑작스러운 경제 변화를 맞았다. 신세계에서 노예 수요가 떨어지고,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반노예제 입법이 늘어나고, 영국 해군이 서아프리카 해안에 출몰하면서 노예 무역은 점차 쇠퇴하여 아프리카 나라들은 새로운 경제 형태를 찾게 되었다. 1808년에서 1860년 사이 영국의 서아프리카 함대는 약 1,600여 척의 노예선을 나포하고 배에 있던 150,000명의 아프리카인을 해방하였다. 노예 무역을 불법화하는 데 거부한 아프리카 지배자들에 대한 응징도 이루어졌는데, 가령 "라고스의 찬탈자 왕" 1851년 권좌에서 쫓겨났다. 반노예제 조약에 50개 이상의 아프리카 나라들이 승인하였다. 서아프리카의 강대국 아산테 연맹, 다호메이 왕국, 오요 제국은 제각기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취하였다. 아산테와 다호메이는 팜유, 코코아, 목재, 등 오늘날 서아프리카 수출의 기반을 이루는 "합법적 상업"의 발전에 주력하였다. 적응에 실패한 오요 제국은 내전으로 붕괴하였다.



식민주의와 "아프리카 쟁탈전"

19세기에 유럽 제국주의 강대국들은 영토 쟁탈전을 벌이며 아프리카 대륙의 대부분을 병탄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식민 국가가 생겼으며, 독립국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일부 정착하여 세운 라이베리아와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신봉하는 에티오피아(유럽인들은 이곳을 "아비시니아Abyssinia"라고 불렀다) 밖에 없었다. 유럽의 식민 지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으며, 전쟁이 끝나면서 여러 나라들이 점차 독립을 얻었다.

아프리카의 독립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국가들이 약화되면서 활발해졌다. 1951년 이탈리아 식민지 리비아가 독립하였다. 1956년 튀니지와 모로코가 프랑스에서 독립하였다. 가나는 이듬해 그 뒤를 따라 사하라 이남에서 최초의 독립 국가가 되었다. 아프리카의 나머지 나라는 이후 10년 사이 독립하였으며, 상당수는 평화적으로 독립하였지만, 일부는 특히 알제리처럼 폭력 투쟁을 거쳐 독립하기도 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최초로 독립을 얻은 나라이지만, 1994년까지 백인 정착민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지속되었다.



식민 지배 이후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53개 독립 주권 국가가 있으며, 이들 나라를 가르는 국경선은 대부분 유럽 식민 지배 시대에 획정된 것이다. 식민 지배 이래 아프리카 나라들은 불안정, 부패, 폭력, 권위주의에 시달렸다.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는 대통령제 형태의 공화국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민주적인 정부를 이룬 나라는 거의 없으며, 대개 쿠데타가 되풀이되며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독립 이후 아프리카의 정치 지도자는 대부분 장군 출신으로, 교육 수준도 낮고 민주적인 통치를 무시하였다.


그러나 이질적인 종족들이 이들 지배자 밑에서 통합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정치 불안정의 요인이다. 여러 정치인들은 정치적 이익("분할하여 통치하라")을 위해 식민 통치로 발생하거나 악화된 종족 갈등을 더욱 부채질하였다. 여러 나라에서 군대는 질서를 제대로 유지할 유일한 집단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군사 지배가 나타났다. 1960년대 초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아프리카는 70번 이상의 쿠데타와 13번의 대통령 암살이 발생하였다. 유럽인들이 그어놓은 국경선 때문에 국경 및 영토 분쟁도 흔하며, 무력 갈등이 널리 일어나고 있다.


미합중국과 소비에트 연방간의 냉전과 국제통화기금의 정책도 아프리카의 불안정에 한몫하였다. 한 나라가 독립하면 이 나라는 두 강국 중 한 곳과 동맹해야 하기 마련이었다. 북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소련의 군사 원조를 받았으며,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의 경우 미국, 프랑스의 지원을 받았다. 1970년대 새로이 독립한 앙골라와 모잠비크가 소련과 동맹을 맺었으며, 아프리카 서부와 남부에서는 반정부 운동에 자금을 지원하여 소련의 영향력을 억누르고자 하면서 갈등이 고조되었다. 1984년 에티오피아의 기근으로 수십만명이 굶어죽었다. 어떤 이는 마르크스 소비에트 정책이 이런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아프리카에서 가장 파괴적인 군사 충돌은 제2차 콩고 전쟁이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이 전쟁과 그 여파로 54십만 여명이 죽었다. 2003년부터 다르푸르 분쟁이 계속되어 인도주의적 재앙이 되었다. 에이즈도 해방 이후 아프리카의 심각한 문제거리이다.                   - 출처 : 위키백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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