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일정 : 2009년 8월 1일 - 10월 7일 : 68일간
여행 종류 : 자유 배낭 여행 ( 현지 Bus 또는 배만 이용 )
여행 루트 : 요르단(In)->이집트->수단->에티오피아->케냐->탄자니아->잠비아->짐바브웨->남아공(Out)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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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00년 ,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지혜 겨루기에서 진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과의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메넬리크 1세가 기원전 10세기 홍해와 가까운 악숨(Aksum)에 왕국을 건설했고, 왕조는 셀라시에 황제가 군사 쿠데타로 폐위된 1974년까지 무려 3000년간 225대에 걸쳐 이어져 내려왔다.
최초의 왕도(王都) 악숨은 유태인들의 성스러운 언약 궤(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담은 궤짝)를 보관하고 있는 유태교의 성지이기도 한데, 이는 메넬리크시대 에티오피아 중북부의 타나 호수에 숨겨져 있던 언약 궤를 찾아내 악숨으로 가져갔다는 전설에 기인한다.
시바 왕조는 4세기에 들어 유태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렇게 해서 에티오피아 정교회가 탄생됐고, 악숨 또한 부흥기를 맞았다. 그러나 악숨은 아라비아반도와의 교역에 의존했던 탓에 7세기경 주위가 모두 이슬람권으로 바뀌자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고대에는 발원한 도시의 이름을 따 악숨 제국으로 불렸다.
에티오피아 제국은 1974년 공산 쿠데타로 제정(帝政)이 붕괴될 때까지 입헌 군주제(입헌 군주제는 20세기 초에 시작)였다.
에티오피아 고원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문명 중 이집트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고유한 문자와 국가체제를 유지해 왔다.
19세기 중반에는 마호메트 알리가 통치하던 이집트의 침략을 막아 내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백인의 침략도 이겨 낸 나라이다(이것을 아도와 전투라고 부른다).
그러나 1936년부터 1941년까지는 파시즘의 불법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 그 이유로 하일레 셀라시에 1세는 1941년까지 영국으로 정치적인 망명을 해야만 했다.
그 후, 1952년 에리트레아와 연방을 맺었고 1962년에는 자국 영토로 병합하였다(에리트레아는 1993년 5월 24일에 독립을 맞이함). 1951년부터 1953년까지는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에 6,000명을 파병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복도 오래가지 못했다. 1970년대에 연이어 발생한 기근으로 1974년 9월 12일에는 하일레 셀라시에 1세가 폐위당하고 솔로몬 왕조도 끝을 맺었다.
이는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군부의 공산 쿠데타에 의한 것으로, 군부는 에티오피아를 공산 국가로 선포하였다. 이로 인해 군부의 공포 독재 정치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게 되었으며,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교회가 문을 닫는 등 박해를 받았다.
1987년 국민투표에 의하여 군부의 기구인 에티오피아 임시 군사 평의회(EPMAC)가 폐지되었고 1992년에 민주화되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파탄이 난 지 오래인 경제를 회복해야 하는 등 할 일이 많이 있다. 참조 :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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